퇴근길에 꽃을 샀다 일상


처음 꽃을 샀던 것이 언제였을까?
내가 처음으로 익힌 꽃의 이름은 튤립과 코스모스였다. 모두 아빠가 좋아하는 꽃.
유년시절 자란 마당 있던 집에는 커다란 목련나무와 그 옆에는 매실나무가 있었는데 봄의 시작은 늘 하얀 목련 나무가 알려주었다.
언젠가 목련나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고, 아무튼.
초등학교 때 엄마 생신을 기념하며 '나드리 프라자' 1층 입구에 있던 꽃집에서 후리지아 한 단을 샀던 것 같다.
언젠가 길을 걷다가 '향이 참 좋지? 저 꽃의 이름은 후리지아야.' 라고 했던 엄마의 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꽃을 받고는 유리병과 폭이 깊은 컵에 후리지아를 소분해서 집안 곳곳에 두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것이 최초에 내가 구입 한 것이겠구나.

이후에 기억나는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하굣길에 집으로 가는 길과는 정 반대인 곳으로 무작정 걸어 가다가 꽃집 앞에서 꽃을 손질하던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 뒤에 구입한 안개꽃 한다발이다. 향이 좋은편은 아니지만 그때는 왠지 '난 안개꽃을 좋아해'라고 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기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안개꽃 한 다발을 품에 안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막 정문을 나서던 같은 학년 애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고 나의 대답에 '응?' 하는 표정을 짓고는 나를 지나쳤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 꼬박꼬박 월급을 타게 되자 한 달에 한 번은 꽃을 사가지고 귀가를 하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한 달에 2번 정도로 그 횟수가 단축됐다. 그마만큼 보이는 것 느끼는 것들이 보다 더 다양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꽃을 산다는 행위는 보통 '축하'를 하기 위한 것인데 내가 꽃을 살 때의 심정은 대게 '위로'의 의미이다.
그래서일까.
이사 온지 이제 곧 있으면 2년이 다 되어 가는 이 동네 단골 꽃집 사장님은 나에게 늘 꽃을 추천할 때면 '기운이 나는 꽃을 사야한다.' 고 하신다. 기운이 없는 사람은 색감이 강한 꽃을 봐야 에너지를 받는다면서.

회사를 그만 두고나서는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이 예전같지 않아서 꽃 사는 행위를 잠시 멈췄었다.
대신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시에서 잘 가꿔놓은 곳곳에 들꽃들을 보며 대리만족을 원없이 했다.

오늘은 요 근래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업무가 한 고비를 넘긴 날이었다.
지지부진했던 업무에 방향성이 잡히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기획안만 완성하면 되니 답답했던 심장에 안개가 걷히는 기분을 느꼈다.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현이에게 전활 걸어 소식을 전하니 당사자인 나 보다도 현이가 더 기뻐해주었다.

18시 칼퇴를 노렸지만 완전히 업무가 완료된 것은 아니기에 19시 퇴근을 목표로 가볍게 업무 정리를 했다.
2주 전, '이제 좀 적응이 된 것 같은데' 하고 생각을 함과 동시에 몰아닥친 업무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쓰나미에서 이제는 익숙해진건지 아니면 정말 잘 이겨낸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오랜만에 개운함을 가지고 퇴근길에 올랐다.

통근거리가 멀어지니 퇴근을 나름 일찍해도 집에 도착하면 1시간이 훌쩍 넘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든 이 동네만의 장점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은 '위로'의 의미 보다는 '축하'의 의미로 나에게 꽃을 선물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병을 꺼내 꽃의 밑을 조금 잘라주고는 꽃이 어울리는 자리에 놓고 한참을 바라 보았다.
하루 24시간 중에 너를 마주하는 시간이 기껏해야 30분도 안 되겠지만 너라는 존재가 나의 작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의미가 되어 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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